파릇파릇 새싹을 틔운 봄, 눈이 시린 청의(靑衣)를 뽐내던 여름, 그리고 형형색색 물든 낙엽들이 처연하게 떨어지는 가을의 한복판에 우리는 서 있다.
자고 일어나면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들이 한껏 움추린 채 종종걸음치는 아침 출근길에 다닥다닥 붙은 건물 사이로 비추는 햇살 한 줌이 그저 따사롭다.
또 한해가 저물어가는 계절이다. 일년 동안 걸어온 작은 삶의 꿰적을 돌아보는 계절이다. 이제 겨울이 스스럼없이 우리 앞에 다가오며 가을을 떠밀어내고 있다.
그래도 가을은 낙엽지는 계절이다 / 이채
그대는 어디로 갔다가
가을이면 산기슭 첫 계곡에 서는가
돌아 온 가을앞에
산은 오늘도 단풍으로 물드는데
저 산보다 붉은 가슴
노을진 서산에 걸어두고
산너머 그리움에
나는 또 저무는 하늘을 보네
그대 사랑에 노래를 부르고
내 노래에 그대 사랑 흘려 보내는
가을이면 그대는 어디로 갔다가
초저녁 별빛으로 한가슴 내리는가
굳이 그대를 탓하지 않으리라
굳이 가을을 탓하지 않으리라
또한 겨울이 다가옴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리라
그래도 가을은 낙엽지는 계절이다.
*이채 : 여섯번째 시집 <중년의 당신 어디쯤 서 있는가>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일반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삶과 낙엽 / 이채
낙엽이 떨어져 땅 위로 뒹굴며 말합니다
삶을 이루었노라고
내가 떠나서 거름이 되어야
푸른 녹색 장원을 이룰 수 있다고
나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 삶이 다 할 때
삶을 이루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후세에게
나의 삶이 과연 거름이 될 수 있을까
내게 던진 이 물음은
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낙엽이 낙엽에게 / 유안진
어느 구도(構圖)에서나
완벽한 예외이던 너, 그대도
찬란한 악센트이던 그, 저대도
눈부신 초점이고 싶었던 나, 이대도
...........................
마찬가지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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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겋게 싯누렇게 물든 얼룩으로
거무죽죽 푸르딩딩 썩어 패인 자국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죄값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