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8일~ 4월30일까지 한달여 동안
폐환풍구 둥지에서는 무슨 일이(?)

그들을 한달여 동안 관찰한 후 4월의 마지막 날에 이 글을 쓰면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영국의 시인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황무지(荒蕪地·The Waste Land)’라는 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중략)… 현실감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중략)… 혹시 때아닌 서리가 묘상(苗床)을 망쳤나?/ 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라는 장문의 서사시를 썼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고 1922년 발표한 시라는 점에서 당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추운 겨울이 지나고 차가운 대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워내며 생명이 움트고 약동하는 계절, 4월을 시인은 왜 굳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생(生)과 사(死)의 엇갈린 운명에 놓인 그들이 그 답을 찾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지금부터 한달여 동안 호기심과 애틋한 부부애에 대한 감동, 그리고 안타까움과 충격, 실망 등이 교차하게 했던 어느 비둘기 부부의 안타깝고도 슬픈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비둘기 부부와의 우연한 만남

기자가 그들의 둥지를 우연히 발견한 것은 지난해 6월 초였다. 당시 기자는 마냥 호기심 어린 눈길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을 <더부천>에 포토 기사로 처리한 바 있다.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에 주목하게 된 것은 해질 무렵 화려한 네온사인에 곡예를 하듯 앉아 있는 모습과 폐환풍기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등 그들이 사는 환경이 좀 특별했기 때문이다.

첫번째 기사는 2007년 6월4일 ‘부천 도심의 비둘기 삶’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땅거미가 질 무렵 그들의 둥지가 있는 3층 건물 바로 옆에 들어선 노래방의 화려한 네온사인 위에서 우연히 노숙(?)을 하는 누어쌍의 비둘기 부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고향을 떠나 도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된 삶을 반추해 보자는 취지를 담은 내용이었다. ▶관련기사 클릭

그리고 같은해 6월13일에는 ‘포토 에세에- 비둘기가 도심에서 살아가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장소의 건물에서 용도 폐기된 환풍기에 둥지를 튼 비둘기 부부가 먹이감을 찾기 위해 힘찬 날개짓을 하며 수시로 들락거리는 모습을 담아 소개했다.

이어, 같은해 같은달 19일에는 폐환풍기에 둥지를 튼 비둘기 부부가 한 개의 알을 낳은 것을 발견하고 ‘부천도심 비둘기부부, 새 생명을 품다’라는 제목으로 비둘기 부부가 낮과 밤을 번갈아 가며 알을 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이후 비둘기 새끼의 탄생을 볼 수 없었던 관계로 더이상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었고 기억 속에서도 차츰 잊혀져 가며 무심하게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해들어 지난 3월28일 작년에 보았던 그 건물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폐환풍기 속에 마련한 둥지에서 다정하게 앉아 있는 건강한 비둘기 부부의 모습이 인상깊에 눈에 뛰는 바람에 카메라에 다시 담게 됐다.

카메라에 이들의 다정한 모습을 담으면서 제발 올해는 낳은 알을 잘 품어서 새끼 구경도 하고 먹이를 주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4.9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은 터여서 선거 관련기사로 인해 몸과 마음이 괜히 바빠지면서 사진기사로도 처리하지 않은 채 무심코 흘려보냈다.

●안타까운 이별, 주검을 품고…

그리고 4.9 총선이 끝나고 훨씬 뒤인 4월18일 폐환풍기 안에 있는 둥지를 바라보았을 때 새 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하얀 알 2개가 가장 먼저 들어와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둥지 안에 있는 비둘기가 알은 품지 않고 무언가를 품고 잔뜩 웅크리고 있는 이상한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카메라로 찍어본 결과,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비둘기는 2개의 알은 그대로 놔 둔 채 옴짝달싹 하지 않고 있는 비둘기를 품고 있었다.

다시 한번 눈을 의심하고 카메라 줌 기능을 최대한 당겨서 찍어 본 결과도 역시 마찬가지 였다.

분명 한 마리는 죽은 채 주검으로 있었고, 그 주검을 살아있는 비둘기가 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안타까운 광경을 확인한 순간부터 여러 갈래의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비둘기 부부의 사랑을 떠올리며

언제 죽었는지 그 시점을 알 수 없지만 싸늘한 주검을 품고 있는 비둘기를 보면서 금슬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비둘기 부부의 감동적인 사랑이 가장 먼저 머리속에 떠올랐다.

알을 낳다가 죽은 암컷을 수컷이 슬퍼하면서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비둘기에 관한 지식이 없는 관계로 그때부터 인터넷을 통해 비둘기에 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비둘기에 관한 자료들은 무척 많았다. 그 중에서 ‘비둘기류는 평생 일부일처(一夫一妻)로 살아가지만 홀로 되면 아주 천천히 새로운 짝을 받아들인다. 암컷은 둥지에 2개의 광택이 있는 흰색 알을 낳는다. 일반적으로 암컷은 밤에, 수컷은 낮에 알을 품는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손으로 알려진 이석씨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부른 ‘비둘기집’이란 노래 가사(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 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도 머리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비둘기에 관해 가장 마음에 들은 내용은 작가 은희경씨가 소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창작과비평사)에서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이란 글에서 ‘도브(Dove) 컴플렉스’에 관해 쓴 글의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블로그에 소개해 놓은 것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 비둘기 암컷은 수컷한테 그렇게 헌신적이래. 그런데 일찍 죽는단다. 자기도 사랑받고 싶었는데 주기만 하니깐 허기 때문에 속병이 든 거지. 사람도 그래. 내가 주는 만큼 사실은 받고 싶은 거야. 그러니 한쪽에서 계속 받기만 하는 건 상대를 죽이는 짓이야. ---

이 내용을 보면서 폐환풍기 안에 마련한 둥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비둘기가 어짜면 알을 낳다가 죽어간 암컷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내용도 찾을 수가 있었다.

비둘기를 보양식으로 즐겨 먹는다는 이집트 사람들은 비둘기를 잡기 위해 통로가 좁은 탑 안에다가 날개를 부러뜨린 비둘기 암컷을 놓아 두면 그곳으로 수컷이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하는 방법으로 비둘기를 잡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폐환풍기 안에 둥지를 튼 비둘기 부부가 2개의 알을 낳았고, 알을 낳은 암컷이 죽게 되자 수컷이 암컷을 품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비둘기 부부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 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주검 품고 둥지 떠나지 않아

4월18일 둥지에 2개의 알만 남겨놓은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비둘기를 살아있는 비둘기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둥지를 떠나지 않은 채 계속해서 품고 있었다.

살아 있는 비둘기가 둥지를 비운 것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4월18일 오후 2시였다. 그후 둥지를 잠시 떠나는 모습은 8일째 되던 날 카메라에 포착됐다.

그동안 살아 있는 비둘기는 주검을 품고 있는 자세만을 이따금씩 고쳐 앉을 뿐 둥지를 좀처럼 떠날 줄 몰랐다.

◆주검 쪼아 먹는 비둘기 모습 ‘충격’

폐환풍기 둥지에서 주검을 품고 있는 비둘기는 배우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키기라도 하듯이 좀처럼 둥지를 떠날 줄 몰랐다.

그런데 주검을 품은 지 8일째 되던 날인 4월26일 오후 5시경 감동어린 부부애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터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주검을 품고 있던 비둘기가 고개짓을 하더니 주검을 향해 부리로 쪼아서 주검을 먹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놀라운 광경이어서 사진 촬영을 하기 보다는 동영상으로 촬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주검을 쪼아 먹는 비둘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주검 쪼아 먹은 뒤 모처만의 외출

배우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둥지를 떠나지 않은 채 주검을 품고 있던 비둘기에 대한 진한 부부애만을 머리속에 생각해오다 주검을 쪼아 먹는 것을 보는 순간, 충격과 실망, 배신감마저 들게 만들었다.

주검을 쪼아 먹은 비둘기는 폐환풍기 입구로 나와 좀처럼 떠나지 않던 둥지를 벗어나 모처럼만의 외출을 위해 날개를 곧추 펴는 동작을 몇차례 한 뒤 이내 어디론가 힘찬 날개짓을 하며 날아갔다가 다시 둥지로 돌아왔다.

●주검을 다시 품고

배우자의 주검을 쪼아 먹은 뒤 잠시 외출을 했다가 폐환풍기 속 둥지로 돌아온 비둘기는 다시 주검을 품고 있다.

처음 주검을 품고 있을 때 잔뜩 웅크린 모습과는 달리 이따금씩 고개들며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살아남은 비둘기가 언제까지 폐환풍기 속 둥지에 남은 배우자의 주검을 품고 있을 것인지는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남은 비둘기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주검을 품고 있다.

한 둥지에서 함께 살다가 2개의 알을 낳아 놓은 채 죽음을 맞이한 배우자의 싸늘한 주검을 온몸으로 품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주검을 쪼아 먹은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가정의 달 5월을 하루 앞둔 4월의 마지막 날, 폐환풍기 안에 마련한 둥지에서 함께 살다가 살아남은 비둘기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린 배우자를 여전히 품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차라리 주검을 쪼아 먹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잔인한 4월 기억의 저편

폐환풍기 속 둥지에 살던 비둘기 부부가 2개의 알을 낳고 생(生)과 사(死)의 엇갈린 운명에서 죽어간 동료를 품고 있는 모습을 한달여 동안 지켜보면서 엘리엇이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4월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약동하는 계절이다. 특히 새 생명 탄생은 고통과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4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가정의 달 5월이 시작된다. 고통, 즉 산고(産苦)와 희생을 감수하는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해 볼 때다.

가장 잔인한 달 4월을 보내면서 폐환풍기 안에 둥지를 틀고 2개의 알을 남기고 비록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부화에는 실패했지만 고통과 희생이 없는 새 생명의 탄생은 이 땅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엇갈린 생과 사로 인해 부부애와 가족애에 대한 진한 감동과 안타까움, 그리고 충격과 실망을 던져준 어느 비둘기 부부의 슬픈 이야기를 기억 저편으로 떠나보내며 좀더 시간이 지난 어느날 폐환풍기 안의 둥지에서 새 새명의 탄생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