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를 따서 먹을 때면 으레 손과 입술에 검붉은 물이 들고 옷으로 쓰윽 닦으면 옷에도 검붉은 물이 스며들곤 했다.
버찌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 보다는 맛이 달지는 않지만 쌉싸름한 맛이 군침을 돌게 해 산벚나무 가지를 툭~ 꺾어서 버찌를 따 먹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버찌를 체리라고도 부른다는 것을, 그것이 몸에 좋다는 것 따위는 어릴 적에는 까마득히 몰랐다. 그저 산과 들을 뛰놀면서 요즘처럼 주전부리 할 게 많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산딸기와 함께 버찌는 저연에서 만나는 좋은 먹거리 중에 하나 였을 뿐이다.
버찌를 따먹은 그 시절이 이제는 잘 익은 버찌의 색깔 만큼이나 까마득하다. 철없이 버찌를 따 먹던 시절이 그립다.
탐스럽게 익은 버찌를 사진에 담는 동안 막내 녀석은 “아빠, 저거 먹을 수 있는거야”라고 자꾸만 물었다.
버찌는 순수 우리말로, 체리라는 서양 과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중국산 체리인 앵두와 우리나라 토종 버찌, 서양 체리는 맛과 색깔은 다르지만 성분은 비슷한 사촌지간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연구에 따르면 버찌, 즉 체리에는 붉은색과 자줏빛을 띈 딸기나 자두, 포도 등 과일에 많이 들어있는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 성분이 아스피린 보다 10배 높은 소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서양에서는 통풍 환자의 염증을 줄이기 위해 매일 체리를 12개 이상 먹거나 체리 쥬스를 하루에 3번 마시라고 권하고 있다.
미국 미시건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체리의 항산화성분이 소염 작용 뿐 아니라 뇌졸중, 당뇨병 발병 위험을 높이는 대사증후군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체리 차나 체리 쥬스는 감기와 기침, 천식과 같은 기관지 질환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처럼 6월에 만나는 버찌는 열매로 먹기도 하고, 빨간 색깔을 낼 때 술을 담아 먹기도 하고, 잼·젤리 등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시인은 버찌를 어떻게 노래했을까.
박두진·조지훈과 함께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1916~1978)은 ‘버찌’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새까만 버찌가
두 가닥
쌍으로
열렸네
- 니네 형제니?
예쁘고 귀여운
버찌가
벚나무에
세 가닥
꼭 붙어 열렸네
- 니네 형제니?.
오보영 시인은 ‘6월 버찌’라는 시에서, 버찌를 이렇게 노래했다.
겉 모양이 좀 달라졌다고
그새 맘 변해
외면해 버리는
차가워진 시선에 가슴이 저려
화사했던 지난 모습
그려보면서
화려했던 지난 시절
떠올리면서
아픔 견뎌 품어 안은
선홍빛 한을
풀어줄까
입에 물어 터뜨려 보며
봄볕 아래 뿜어내던
향기 돋운다
건네주던 네 마음을
다시 새긴다.
조찬용 시인은 ‘벚나무 버찌들이 불을 밝히는 밤’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한 때 버찌들이
밤낮으로 빨간 전등불을 켜고
밤을 지샌다는 것을 몰랐다
숲 속의 새들이
저녁 노을을 바라보다 돌아온 벚나무 숲길은
어둠이 되어도 밝기만 했다
낮에도 이 숲길에는
그늘로 발디딜 틈 없이 굴속이었지만 숲길은
이파리 사이사이 버찌들로 등불을 켜느라
| AD |
땀방울이 전구 알처럼 붉었다
어느 날 벚나무 숲길에서 보면
밤을 밝히느라 까맣게 속이 타버린 버찌들이
주렁주렁 하늘 가지에 매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