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과 공사현장 등지에서 상습적으로 전선을 훔치다 붙집힌 40대 남자가 11년전 무단 가출해 사망자로 간주돼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부천원미경찰서는 31일 지난해 11월부터 부천종합운동장 놀이공원과 서울지하철 7호선 부천 연장구간 공사현장 등에서 새벽 시간에 20여 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1천500만원 상당의 전선을 절단해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박모(41)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특히 박씨를 검거해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박씨가 사망자로 간주돼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박씨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기구한 삶의 여정이 그 속에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11년전에 가정 불화로 무단 가출해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했으나, 장기간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2010년 법원에서 실종선고를 통해 박씨를 사망자로 간주해 주민등록상 사망 말소된 상태가 됐다는 것.

박씨는 가출한 뒤 노동 등 힘든 일도 가리지 않고 성실히 일해오다가 주민등록 사망 말소사실을 알고 사망자 신분으로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되면서 과거 전선과 관련된 일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놀이공원 등지에 있는 전선을 훔쳐 고물상에 팔아 생활미를 마련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박씨의 이같은 절도행위는 오래 갈 수가 없었다. 놀이공원 측에서 전선을 누군가 끊어간 사건이 빈발한데다, 행락철을 맞은 공원 내 놀이기구는 작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자주 발생하면서 경찰에 신고, 잠복중이던 형사들에 의해 결국 지난 27일 꼬리가 잡히게 됐다.

경찰에서 박씨는 “사망자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살아남기 위해서 범죄는 저질렀다”며 “서민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그들의 물건보다는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전선을 훔쳐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박씨의 딱한 사정을 고려해 지난 29일 헤어졌던 가족과 상봉을 주선했고, 박씨를 애타게 찾았던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형으로부터 전해들은 박씨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주민등록을 부활해 사망자에서 다시 살아나게 된 박씨는 “이제 홀가분하다”며 “죄값을 치르고 나면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박씨의 사건을 담당한 원미경찰서 강력4팀 최정식 팀장(경위)는 “이번 사건은 좌절과 고립 상태로 한계상황이 불러온 범죄 사례”라며 “박씨 와 비숫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다시 사회로 복귀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관심을 통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